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옮긴이의 글

프로젝트 세미콜론

당신의 이야기는 끝나지 않았다 

 

 


에이미 블루엘 지음 김진희 옮김 북레시피 | 2017년 10월 05일 출간









...고소공포증 있어요......’

 




함께 놀이기구를 타려고 잔뜩 기대에 부풀었던 친구들의 실망어린 표정을 보고 있노라면 마음 한 구석에서는 미안한 마음이 굴뚝같지만 또 다른 한구석에서는 남들 다 놀 때 혼자만 놀 줄 모르는 숙맥처럼 보일까 봐 자존심에 슬쩍 생채기가 난다. 살아오면서 산수절경의 구름다리, 스키장의 리프트, 테마파크의 각종 스릴 넘치는 놀이기구는 물론 그 흔한 놀이공원의 롤러코스터까지 뭐 하나 빠질 것 없이 다 즐겨본 적 없는나로서는 이 책의 주인공들의 진솔한 이야기가 좀 더 공감 가는 울림으로 다가왔다.




 

이 책 프로젝트 세미콜론에 등장하는 저자들은 고소공포증보다 훨씬 심한 마음의 감기를 앓고 있는 친구들이다. 흔히 저자가 글을 쓸 때 문장을 끝낼 수도 있지만 끝내지 않기로 선택하며 문장 부호 세미콜론을 사용하듯이 이 저자들도 삶을 끝내지 않기로 선택하고 이 책에 자신만의 진솔한 삶의 발자취를 담아냈다. 하지만 그들도 한때는 각종 정신 질환에서 오는 고통, 자해, 자살이라는 흑암의 악순환 속에서 내일이라는 가치에 의문을 품은 자들이었다. 사실 이 책을 처음 읽는 독자라면 얼핏 서로 비슷해 보이는 짧은 글들이 뭐 그리 대단한가?’라고 의문을 품을 수도 있다. 하지만 이 글들이 하나하나 다 소중한 까닭은 바로 저자들이 자신과 비슷한 처지에 있는 사람들에게 삶의 희망을 선사하려고 그동안 꽁꽁 숨겨왔던 자신만의 비밀을 풀어 놓은 데 있다. 자신의 자존심 따위는 아랑곳하지 않고 오직 이런 목적으로 자신의 밝히고 싶지 않은 삶을 여과 없이 써내려간 글만큼 값진 글이 또 있을까?




 

저자들의 진솔한 이야기가 내게 감동거리를 선사했다면 그들이 맞닥뜨린 사람들의 따가운 시선은 내게 생각할 거리를 던져줬다. 참 아이러니하게도 저자들은 이 사람들때문에 가장 괴로운 순간을 맞이하기도 했지만 바로 이 사람들때문에 삶의 가장 큰 희망의 실마리를 발견하기도 했다. 많은 사람이 노희경 작가의 <괜찮아, 사랑이야>라는 드라마를 기억하고 있을 것이다. 장재열과 지해수가 이어가는 보기만 해도 녹아버릴 것 같은 달달한 로맨스가 가장 먼저 기억이 나겠지만, 사실 이 드라마는 마음의 상처를 지닌 남녀가 만나 서로의 상처를 보듬고, 감싸고, 치유해나가는 이야기다. 드라마가 방송을 타기 전 <괜찮아 사랑이야> 제작진도 이 드라마가 지닌 특별한 의미에 대해 정신과가 마음의 감기가 걸리면 누구라도 한 번 쯤 갈 수 있는 곳이구나, 너와 내가 이상한 게 아니라 조금 특별했구나 라는 걸 우리 드라마를 통해 전달하고 싶다라고 밝힌바 있다. 나는 이 책에 등장하는 저자들 역시 조금 특별할 수는 있어도 결국 나와 별반 다르지 않은 사람들이라는 점을 독자가 알아봐줬으면 한다.




 

사실 마음의 영역에서 벌어지는 온갖 복잡한 일로 말하자면 우리의 정신세계에서도 저자들의 정신세계 못지않게 많은 일이 벌어진다. 애니메이션 영화 <인사이드 아웃>을 보면 우리의 머릿속에는 기쁨, 슬픔, 버럭, 까칠, 소심이라는 다섯 감정들이 밤낮없이 열심히 일하고 있다. 물론 아이들을 대상으로 한 영화이긴 하지만 이 영화를 본 어른들의 반응도 사뭇 진지하다. 그도 그럴 것이 날마다 겪는 시행착오와 상처의 양으로 따지자면 우리 어른들이 지금 아이들이 겪고 있는 수준보다 많으면 많았지 결코 덜하지 않기 때문이다. 우리는 자신의 현재 감정이 좋든, 슬프든, 화나든, 늘 고객을 대하는 마인드로 회사가 요구하는 감정과 표현을 고객에게 보여주며 살아가는 이른바 감정노동자들이다. 누구나 케미라는 말을 들어봤을 것이다. 화학 반응을 의미하는 ‘chemistry’의 줄임말인 이 말은 원래는 남녀 사이에 잘 맞는다라는 정도의 뜻인데 언제부턴가 사람 사이의 호흡이나 조화를 나타낼 때도 쓰이고 있다. 아무튼 이 말을 그렇게 너도 나도 대단하게 받아들이고 사용하게 된 배경을 역설적으로 짚어 보자면 그만큼 이 케미라는 것이 맞추기 어렵다는 뜻이기도 하다. 그런데 이 케미를 맞추려는 수없이 많은 노력을 통해 우리는 누구나 한번쯤 거절을 당해봤고 그럴 때마다 이 고통이 주는 무게가 얼마나 큰지 이해하게 됐다. 또 우리는 이 고통을 통해 아픈 만큼 성숙해진다는 가치를 이해하고 이 가치를 반면교사 삼아 상대방의 아픔에 대해 무한한 공감 능력을 발휘할 수 있게 됐다.

 




만성 조현병 환자로 젊을 때 와해된 언행, 망상, 환각으로 여러 차례 병원에 입원했던, 미국 남캘리포니아대(USC) 법대 교수인 엘린 삭스는 언제 고개를 내밀지 모를 조현병을 앓고 있으면서도 박사학위도 취득하고, 교수도 되고, 결혼 생활도 하고, 자서전도 출간하며 정신장애에 대한 인식 개선을 위한 활동을 이어나가고 있다. 하지만 그녀가 이렇게 자신의 삶을 희망과 긍정으로 개척해나갈 수 있었던 것은 꾸준한 치료도 한몫 톡톡히 하긴 했지만 무엇보다도 자신의 병을 이해해주고 보듬어준 가족, 친구들, 직장 동료들이 있었기 때문이다. 엘린 삭스와 같이 이 책의 저자들도 주어진 삶을 받아들인 채 언제 고통이 다시 시작될지 모른다는 두려움을 안고도 죽음이 아닌 삶을 개척하기로 택한 사람들이다. 우리가 갈고 연마한 고통에 대한 내성과 공감능력을 활용해 이 책의 저자들과 같은 처지에 있는 사람들을 조금만 더 보듬고, 감싸고, 치유해 준다면, 희망이 용기를 낳고 용기가 희망을 낳는 선순환의 드라마가 삶의 곳곳에서 펼쳐지지 않을까? 정신적인 어려움이 계속되는 상황에서도 안간힘을 쓰며 역경을 희망으로 바꿔나가고 있는 저자들의 삶에 가슴 깊이 우러나오는 박수를 쳐주고 싶다.

 

 



 

프로젝트 세미콜론의 모든 저자의 용기에 박수를 보내며

20179, 역자 김진희







<김진희 번역가의 포트폴리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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